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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오 스님 금강경과 함께 깨어나기


역(逆)은 순(順)에서 완전해지고 순(順)은 역(逆)에서 완전해진다

이 책(금강경)은 역관(逆觀)으로써 순관(順觀)을 완전하게 하려는 책입니다.

여기서 역관과 순관이란 용어는 불교사전에서 풀이하는 뜻과 다른 것입니다.

역관이란 그냥 거역하고, 반역하고, 거꾸로 보고, 거스르는 비점(批點)이라는 뜻입니다.

순관도 ‘제대로 된 질서’ 또는 ‘진리의 시스템’을 완성한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그러나 역관이든 순관이든 이 모든 관점은 무수한 원인과 조건에 의해 생겨난 것이므로 정체성(정해져 있는

본체의 자성)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기불교는 연관(緣觀)을 가르쳤고, 대승불교 반야경전들은 무유정법(無有定法)을 가르쳤습니다.

여기서 연관이란 어떤 결과를 나타나게 하거나 무르익게 하는 조건이나 여건에 대한 성찰을 의미하는데, 양자

역학의 명제로 풀이하면 ‘관찰자가 곧 관찰대상이다(즉, 원자수준에서 관찰자의 관찰행위는 관찰대상에 결정

적인 영향을 준다는 진리)’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무유정법이란 ‘고정불변의 법은 없다’는 뜻입니다.

즉 무유정법이란 ‘모든 것이 가정(假定)’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이론과 논리란 공리상(公理上)에서만 유효한 진리라는 것입니다.

반역적인 사고로써 순종적인 사고를 완전하게 한다

이렇게 이 《금강경과 함께 깨어나기》는 저의 역사적(逆思的)인 담론을 통해 금강경의 순사적(順思的)인 순

사(順事)를 이루려는 책입니다.

여기서 역사란 ‘반역적인 사고’라는 의미이고, 순사란 ‘순종적인 사고’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순사(順思)의 순사(順事)’란, 금강경을 매일 읽으면서 타인을 위해 해설하는 것, 즉 완전한

지혜 (가득 차 있는 통찰력)의 성취를 함께 나누겠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반역적인 사고(개인적, 회의적, 비판적 사고)’든, ‘순종적인 사고(집단적 사고, 무비판적 사

고)’든, 사고는 모두 무수한 원인과 조건에 의해 나타난 것이므로 고정불변의 정체성(정해진 본체성)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사고는 무유정법이요, 응무소주(應無所住)입니다.

여기서 무유정법이란 ‘정해져 있는 자체성과 실체성과 본체성은 없다’는 의미이고, 응무소주란 ‘마땅히 집

착하는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순행하면 보통사람이 되지만 역행하면 깨달은 자가 된다

옛 중국 청나라의 유일명은 《주역천진》에서 다음과 같이 쓴 바 있습니다.

"쫓아가면 보통사람이 되고, 거스르면 仙佛이 되니, 다만 그 중간에서 거꾸로 뒤집는데 달려 있을 뿐이다.

그러나 거슬러 운행하는 도를 어떻게 쉽게 알겠는가!" 라고.

나는 어릴 때부터 '네티 네티(Neti-Neti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라는 부정적인 방법으로 진리를 깨닫

는 것)'의 逆理와 卽非의 부정적인 논리의 변증법을 잘 아는 사상가입니다.

그리고 달이 차면 기운다고 "사물이 극도에 이르면 반대로 가고, 운명이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 는

《주역》의 가르침과, "천지의 도는 극도에 이르면 곧 뒤집어지고, 가득차면 곧 이지러진다" 는 《회남자》

의 말처럼, 우주와 지구와 인간만 사는 극에 도달하면 반드시 반전한다는 이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방식대로 反逆之道 (자신의 에너지를 반대방향으로 되돌리는 것)의 역설적인 말들을 함으로

써 지혜의 완성을 도모하고자 합니다.


석진오 스님의 《금강경과 함께 깨어나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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