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과 책걸이
'여·야', '주류·비주류' 그리고 '재야'…. 정치권에나 해당 될법한 용어 같지만 이런 형태의 분류는 문화계와 학계에서도 엄연히 존재합니다. 그럴싸하게 '학파'나 '학설'이라는 말로 포장하고 있지만 결국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집단과 그 바깥의 집단 사이에서 형성되는 무형의 경계가 될 것입니다. 학계로 치자면 천동설을 뒤엎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입지를 굳혀 나갔던 과정이 이러한 갈등의 대표적 예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가시적으로 증명해 보일 수 있는 물리나 과학 분야에서도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만 많은 가설과 역사를 전제로해 설명되는 종교, 고대사, 문화 분야에서는 그 정도가 더 심한 듯합니다. 기득세력을 향한 적극적 항변 <바람타고 흐른 고대문화의 비밀>의글쓴이 정진형, 그는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부터 경주에 머물며 한국 고대사와 고대 종교문화를 연구하고 있습니다.정진형 역시 연구 활동과 집필 과정에서 기득권의 장벽과 제도권의 무사안일을 절실하게 실감하고 있는 듯합니다. "한국 역사학계와 정부 대응의 기본적인 문제는 첫째, 역사학계 내부의 문제이다. 역사를 전공하고 학위를 전공한 교수마저도 상고사를 연구하면서 새로운 가설을 제기하면 '재야사학자'로 치부한다. 이런 풍토에서는 유능한 역사학자가 한민족의 상고사를 연구하기는 힘들다. 둘째, 그러한 학계의 풍토를 직시하지 못한 정부가 역사문제에 관한 조언을 구할 때 그 대상자가 바로 그런 풍토에서 기득권을 장악하고 있는 교수라는 점이다. 그러니 제대로 된 상황판단을 할 수 없다. 작은 기득권을 버리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으면 한다."(본문 35쪽) 대개 학자들은 학계 내 기득세력의 배타성에분개하지만 자신들의 저서에는 그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글쓴이 정진형은 이 책을 통해 기득권이 쳐놓은 장벽을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바람타고 흐른 고대문화의 비밀>은 우리나라에 유·무형으로 전해지는 고대문화가 담겨져 있습니다. 또한의식 또는 무의식적으로계승되고 있는 우리 문화 속 비밀코드처럼 숨어있는 내용을 해부해 담고 있습니다. 한민족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단군신화에서부터우리 생활에 녹아 들어있는 사상과 가치의 기원·유래·변천사 등을 출토 유물을 통한 고증, 현장 사진과 같은 입증자료를 바탕으로 해 입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문화 요즘에도 차를 새로 사거나, 집을 지을 때 고사를 지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죽은 사람을 염(죽은 사람의 몸을 씻긴 뒤에 옷을 입히고 염포로 묶어 관에 넣는 일)할 때 대부분이 칠성판이라는 것을 씁니다. 굿을 하는 무당들이나 승무를 추는 스님은 고깔을 쓰고, 교황이나 추기경들 역시 모자를 씁니다. 이 책은 고사나 상량식 때 왜 복어를 사용하는지, 죽은 사람을 염할 때 사용하는 칠성판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교황이나 추기경들이 쓰는 모자의 생김새에는 어떤 유래가 담겨 있고 변천사가 농축돼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고기는 예수를 상징하기도 한다. 로마시대 박해를 받을 때 그리스도교인들은 물고기를 자신들만의 비밀스러운 암호로 사용하면서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사람들은 물고기를 뜻하는 헬라어ⅠⅩΘγΣ(익스투스)라는 글자를 함께 사용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라는 단어의 첫 글자를 모아 놓은 것이다."(본문 172쪽) "뒷전에서 무당이 두 마리 명태를 들고 굿을 하는 이유는 바빌론의 구나의식에서 악귀를 쫓는 의식과 맥이 닿아 있다. 바빌론의 두 물고기 사제가 우리 무속에서는 두 마리 명태로 화석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뒷전거리를 하는 무당은 두 마리 명태를 들고 잡귀들을 물리치고 있는 것이다."(본분 181쪽) "이는 전통 상례(喪禮)에서 관 위에 혹은 바닥에 칠성판을 까는 풍습에 빗대어 하는 말이다. 조상들이 무덤에 칠성판을 까는 이유는 사람의 얼(혼)이 그곳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육신의 넋(백)은 땅으로 돌아가고 얼은 고향인 북두칠성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다."(본문 69쪽) <바람타고 흐른 고대문화의 비밀>은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종교인들은 고사같은 의식을 미신(迷信)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하지만 그들의 종교에서 행해지는 의식이나 절차 중에도 자신들이 미신으로 치부해 버리는 비슷한 가치와 유래가 담겨져 있다는 것을 알려 줄 것입니다. 김수로왕이 다문화가정 출신? 요새는 '다문화가정'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국제결혼을 한 가정이 많습니다. 그러함에도 한민족, 단일민족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고 다문화 가정을 경외시 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다문화 가정을 이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야의 왕,김수로왕(김해 김씨의 시조)의 부인 허황후는 인도인이었으며 신라의 왕족들이 사카족(인도)이었으니 순혈주의 단일민족을 말하는 것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자기모순이 될 것입니다. "수로왕과 허황후가 국제결혼을 할 수 있었던 정황은 충분하다. 인도와 중국 그리고 한반도와 일본으로 연결되는 해상 실크로드는 상당히 일찍 조성되었다. <한서> <지리지>는, 기원전 3세기 진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하고 나서 남양 각지와 해상교역을 했다고 전한다. 또한 기원전후에는 부남(베트남)으로부터 인도 동남단의 황지(黃支·칸치푸람)까지 해로가 개척되어 11개월이면 오갔다. 또한 기원전 2세기에 전한의 사절이 외국선을 갈아타며 인도에 갔다는 기록도 보이며, 반대로 로마시대에 그 지배 아래 있던 오리엔트의 배들이 인도, 실론을 넘어 캄보디아까지 진출했다는 기록도 있다."(본문 167쪽) <바람타고 흐른 고대문화의 비밀>에서 글쓴이가 들려주고 보여주며 하나하나 벗겨주는 고대문화의 비밀은 우리들의 일상과 사고에 녹아 있는 가치이며, 가치에 깃든 배경이자 변천사입니다.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거나 선호하고 있는 '7'이라는 숫자에 깃들어 있는유래, '3'이라는 숫자가 가지고있는내력을논리적 규명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새 시대의 솥의 주인공이 펼치는 미륵의 세상, 용화 세계는 미륵의 자격을 가춘 이를 지도자로 모시고 그를 역사의 무대에 올릴 때, 그 실현이 가능하다. 그 분은 생명의 샘에서 생명수를 퍼 올리고 하늘의 불로 생명의 밥을 지어, 온 인류에게 영적인 행복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구시대 문명사의 여러 경로를 통해 생명의 밥을 지어온 미륵, 그가 꿈꾸는 세상이 21세기 한반도에서 꽃피어 세계로 퍼져나가길 기대해본다."(본문 425쪽) 생명수를 퍼 올려 하늘의 불로 생명의 밥을 지어 온 인류에게 영적인 행복이 제시되는 세상, 글쓴이가 기대하는미래 한반도의 모습입니다. 맨눈으로는 볼 수 없었던 햇살이지만 프리즘을 통하면 일곱 빛깔 무지개 색의 햇살을 볼 수 있듯이 <바람타고 흐른 고대문화의 비밀>은 지금껏 보고, 듣고, 말하고, 영유하고 있으면서도 알지 못했던 그것들, 고대에서부터 흘러내리며 우리를 감싸고 있지만 감지조차 하지 못했던비밀을 형형색색으로 투시해 볼 수 있는 프리즘이 될 것입니다. |
출처:오마이뉴스 | 원본보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46701 발품 팔아 연구한 한민족 상고사의 산물 저자는 한국에 있는 다양한 유적과 자료를 통해 한민족의 정체성에 접근해간다. 사진은 '칠교도보'라는 조선 후기 장난감책에 보이는 삼신산 흔적. - 많은 사진자료 실어 눈길 - 바람 타고 흐른 고대문화의 비밀/정형진 지음/소나무/1만7000원 이 책들은 한민족 상고사를 깊이 연구한 끝에 나온 산물이다. '고깔 모자를 쓴 단군'은 한민족의 주요 구성 종족인 부여족의 기원지와 '이동'에 대한 탐구다. '실크로드를 달려온 신라 왕족'은 신라 왕족의 원류를 북방 계열 샤카족과 연결시켰다. '천년왕국 수시아나에서 온 환웅'은 한민족의 뿌리를 형성하면서 정신사에도 큰 영향을 끼친 환웅세력의 기원을 폭넓게 연구한다. 그의 저술은 기존 연구 성과를 폭넓게 읽고 비판적으로 반영한다는 점과 엄청난 발품을 팔아 관련 현장을 찾아다니며 고대사의 증거를 찾아내고 제시한다. 경남 양산 통도사 가람각에 있는 목조 불상(이 불상은 일본 불교의 대흑천상과 유사하다). '우리의 역사나 문화유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민족을 형성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파악해야 한다'. 책의 서장에 써놓은 이 문장이 책의 출발점을 이룬다. 그는 고대사를 '국제사'로 파악한다. 상고시대를 현재의 시각으로 보는 것부터가 큰 잘못이라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그는 영국의 생물학자 크리스 타일러-스미스의 연구를 제시한다. 한민족의 'Y염색체 유전형'은 주로 3가지, C형 D형 O형으로 구성되는데, O형은 한국인이 몽골인보다 중국 북부인과 더 가깝고, C형은 중국 북부인보다 몽골인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그 요지다. '현재의 유전학 연구 성과만을 두고 볼 때 한민족을 구성한 주요세력은 천산을 넘어온 사람들, 중국 중원에 뿌리를 둔 사람들, 그리고 바이칼이나 몽골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다'. 경남 양산 천성산에 남아 있는, 마고여신의 성기를 연상시키는 바위. 국제신문 DB 및 소나무출판사 제공 또 신라인들이 쓴 고깔모자에서 출발해 각종 자료를 직접 보여주면서 이것이 북방 계열 샤카족과 연결된다고 증명한다. 이 책은 한반도 곳곳에 남아 있는 우리 상고사의 증거들을 많은 사진자료와 함께 보여줘 매우 흥미롭다. '국제신문'에 '역사연구가 정형진의 고대사 새로 읽기'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을 토대로 했는데, 대폭 수정과 보완을 거쳐 완연히 새로운 책으로 읽힌다. 조봉권 기자bgjoe@kookje.co.kr |
'기본카테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찻집 다요 (0) | 2011.12.04 |
---|---|
경주남산 칠불암가는 길의 작은 돌탑 (1) | 2011.11.17 |
금봉암 (0) | 2011.09.23 |
2011년 하안거 (0) | 2011.08.14 |
야생화 차한잔에 즐거움 (0) | 2011.07.24 |